농약 중독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2차 자료 및 표본 설문조사를 통해 살펴본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그림 2-3>과 같다. 즉 우리나라에서 10만 명당 급성 농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약 5.7명, 농약 중독으로 인한 입원은 약 17.8명, 응급실 방문은 약 26.8명, 병의원 이용은 약 18.3명으로 파악되었다. 건강보험 자료의 경우 자살이 보험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 농약 복용의 경우가 상당히 누락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국내 농업인 표본조사에 의하면 남성 농업인 100명당 직업성 농약 중독 발생률이 약 24.7명으로 보고되었으며, 농업인 100명당 약 2.7명은 매년 농약 중독에 의해 병의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급성 농약 중독 규모는 비슷한 경제수준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자료원을 통해 급성 농약 중독의 규모를 종합적으로 파악한 결과는 국제적으로도 흔하지 않는 내용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급성 농약 중독의 규모를 파악하고 농약 중독의 예방을 위한 중요한 기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림 2-3> 국내 자료원별 급성 농약 중독률 규모 (인구 10만 명당)
한편 각 자료원별 중독 의도성, 치명률, 남녀별 특성을 살펴보면 <표 2-14>와 같다. 의도성은 사망 자료에서 가장 높고 퇴원손상심층조사 자료, 응급실 자료순으로 감소되었으며 건강보험 자료에서는 관련 정보가 없었다. 치명률은 사망 자료에서는 산출할 수 없었으며 퇴원손상심층 자료에서 다른 자료원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농약 중독자는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으며 사망 자료에서는 그 차이가 약 2배로 가장 컸다. 각 자료원별로 농약 중독 환자들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각 자료원이 가진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농약 중독 환자들의 역학적 특성을 올바로 해석하는 데 중요하다.
<표 2-14> 국내 자료원별 농약 중독 환자의 특성별 비교
(단위:%)
농약 중독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사망 및 병의원 이용 자료만을 살펴보게 되는 경우 농약 중독에서 자살복용의 문제점만을 부각하게 되며 농약의 문제가 마치 자살 복용의 문제만인 것처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약 중독에는 병의원 자료에 잡히지 않는 많은 수의 직업적 중독 및 만성적 노출에 의한 건강영향, 그리고 일반 주민에서의 여러 농약 관련 사고 등이 있다. 의료인들도 농약 중독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농약 중독을 모두 진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단지 병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들만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은 농약 중독 환자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지역사회 설문조사를 통해서는 직업적 중독을 파악하는 데 유리하지만 자살 목적으로 복용하는 경우는 올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농약 중독에 대한 전체적인 규모와 발생 양상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자료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2차 자료 및 직접조사를 모두 종합하여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패러쾃(paraquat)은 비선택적 제초제(상품명:그라목손, 뉴속사포 등)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던 농약이다. 2011년 말 재등록이 취소되었고 2012년 11월 말부터는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망 및 중독과 관련되어 있는 농약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패러쾃은 다른 농약에 비해 동일한 양을 복용하더라도 사망률 자체가 훨씬 높다. 2008년에 농촌진흥청이 전국 응급실 환자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농약 중독 중에서 패러쾃으로 인한 중독 건수가 가장 많았으며 사망률도 약 78%로 다른 농약들에 비해 가장 높았다. 독성기전으로는 일차 표적 장기로서 폐에 미치는 호흡기 영향이 가장 치명적으로 고노출 시 폐조직에 산화손상을 야기해 초기에는 폐부종 및 폐손상이 일어나고 이후 폐섬유화로 진행되어 1-2주 내 사망하는 경과를 보인다.
패러쾃은 직업적으로 농약에 노출되고 있는 농업인의 파킨슨병, 천식, 호흡기 증상, 갑상선 기능저하 등 많은 건강문제와도 연관성이 의심되고 있다. 국내 농업인들에서 패러쾃의 직업적 살포가 폐쇄성 폐 기능 장애의 위험도를 유의하게 증가시킨다고 보고된 바 있다. 또한 국내 남성 농업인에서 패러쾃 농약으로 중독된 경우 우울 증상의 위험도가 2배 이상 유의하게 증가되었으며 농약 중독의 중증도가 심할수록 우울 증상이 증가되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패러쾃의 독성이 매우 강하고 사람에게 비가역적인 치명적 건강영향을 초래하며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을 금지시킨 바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2007년도에 패러쾃의 재등록을 취소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패러쾃 노출과 파킨슨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따라서 패러쾃을 사용할 때 철저한 보호구 착용과 안전규칙을 준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규정을 잘 따르고 작업하더라도 허용기준보다 높게 노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며 이것은 유럽연합에서 패러쾃을 재등록시키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의 하나였다.
유럽연합에서는 패러쾃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형태로 관리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사용을 허용하되 사용 시 철저히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미국에서와 비슷한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1999년과 2005년에 두 차례에 걸쳐 패러쾃 특별 관리대책을 발표한 바 있으나 패러쾃으로 인한 농약 중독 사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한편 농약제조 회사의 영향력이 큰 일본에서는 1986년부터 5%로 희석된 패러쾃 농약을 생산하는 변형된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던 24% 패러쾃을 복용하여 사망하는 경우들이 2000년대 초반 연구에서도 보고되고 있다. 일본에서 패러쾃으로 인한 중독 사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비록 희석 농약이라 하더라도 80% 이상의 높은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패러쾃의 경우 제품 농도를 낮추는 것이 중독을 예방하는 적합한 방법이 아니며 희석된 농도의 패러쾃이라고 하더라도 농업인이 작업 중 살포 시에는 희석하여 사용하므로 결국 고농도 제품과 비슷한 농도로 노출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2012년 말부터 패러쾃의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그동안 패러쾃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고려하면 매우 늦은 조치였다. 이와 관련되어 우리나라 자살을 비롯한 농약 중독 건수가 패러쾃 사용금지 전후로 줄어들 것인지 비교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줄 수 있다. 또한 농약 중독의 물질이 다른 농약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어 물질별 확인에 초점을 맞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망 및 중독 자료들을 비교할 필요가 있으며, 각 일선 병원에서도 2012년을 전후로 농약 중독 환자들의 건수, 치명률, 증상, 역학 및 임상적 치료 형태 등이 차이가 나는지 조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특정 농약의 금지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농약 중독의 규모와 양상 그리고 자살률을 바뀌어 놓을지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앞으로 농약 규제에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
농약 복용에 의한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예방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되어 주로 손상연구에 적용되었던 해던매트릭스(Haddon matrix)를 자살 목적의 농약 복용 예방에 적용하여 인적 요인, 농약 자체 요인, 환경적 요인으로 나누어 제시된 바 있다(표 2-15). 해던매트릭스는 1968년 William Haddon이 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의도로 제시된 개념적 체계를 말한다. 사고에 관련된 요인들을 사람, 원인인자, 물리적 환경, 사회적 환경 등 4가지로 나누고 이를 사고 발생에 따른 시간적 과정(사고 전, 사고 시, 사고 후)에 따라 정리한 표인데, 사고뿐 아니라 다양한 질병들의 서로 다른 요인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예방을 위한 개입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표 2-15> 농약 복용 사망에 영향을 주는 인적, 농약 및 환경적 요인
출처:Eddleston M et al. Identification of strategies to prevent death after pesticide self-poisoning using a Haddon matrix. Injury Prevention. 2006.
인적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주이다. 음주로 인해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고 농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음주상태에서 농약을 복용하게 되면 질식과 호흡부전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또한 농약 중독 후 치료과정에서도 음주에 의한 금단증상은 치료 경과를 더욱 나쁘게 만든다. 따라서 음주는 농약 복용 전, 복용 시, 복용 후 모든 과정에 걸쳐 통제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그 외 고연령, 남성, 충동성, 식후 경과시간 등이 농약 복용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복용 당시에는 음주와 의도성 요인이, 복용 이후에는 도움을 구하는 행위, 건강상태, 연령, 유전적 요인 등이 농약 중독으로 인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농약 자체 요인으로는 농약의 독성, 농도, 섭취량, 제조 형태, 중독 발현 속도, 치료 효율 및 치료제 여부 등이 관여한다. 환경적 요인으로서 사고 전에 중요한 요인들은 농약의 안전한 보관, 농약 금지 및 제한, 접근성(accessibility) 등이며 중독 시에는 다른 사람과의 근접성이 중요한 영향을 준다. 중독 후에는 일차 치료, 도움 추구 행위, 병원후송 체계, 각 병원에서의 치료 가능성 및 질적 수준 등이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매트릭스는 농약 중독에 어떤 요인들이 관여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고 그에 따른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트릭스는 어떤 요인에 우선을 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비용효과가 검증된 예방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즉 성, 연령, 유전적 요인은 교정할 수 없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발현되느냐는 사회적 환경 및 문화를 통해 조절될 수 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취급되느냐에 따라 생물학적 성적 차이는 불평등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위에 제시된 해던매트릭스에서는 누락되어 있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 대한 항목도 농약 중독 요인과 중요하게 관여되어 농약 복용은 교육수준이 낮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집단에서 더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농약 복용으로 인한 자살을 예방하는 데 실질적 기여가 된다. 또한 농약 자체 및 환경적 요인을 교정하는 것이 인적 요인의 개입보다 더 쉽고 효율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농약 복용 중독의 예방을 위해 고독성 농약의 사용을 줄이고 접근을 제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농약 복용은 충동적이어서 농약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상당한 예방이 가능하다. 스리랑카에서는 맹독성 및 고독성 농약과 endosulfan 농약을 금지시킴으로 인해 자살률을 감소시켰고, 인도에서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작업을 적용한 이후에 자살자의 숫자가 감소된 바 있다. 우리나라와 스리랑카에서 보고된 연구들에 의하면 농약 복용 시 특정 농약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는 그 농약에 대한 접근성에 있었다. 즉 의도적으로 특정 농약을 선택하는 경우보다는 주변에 있는 농약이 무엇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농약에 대한 접근성을 줄이는 것이 농약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대책이다.
농약의 접근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재 스리랑카에서 각 농가에 농약 보관함을 설치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현재까지 부분적인 예방 효과를 보여 주고는 있지만 이러한 방법은 자칫 농약 복용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킬 수도 있다. 보관함 설치 이전에 맹독성 농약을 사회에서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적 대책이 선결되는 것이 사람들에게 농약의 접근성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던매트릭스에 제시된 많은 요인들이 농약 중독 예방을 위해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농약 복용자 중에 상당수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농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음주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판단되며, 그 외 농약 자체의 독성을 감소시키거나 복용하기 어렵게 제조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요인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농약 중독 환자들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특이적인 매트릭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잘 알려진 교육 및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에서는 효과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각 나라별 적합한 특이적 전략 개발은 중요하다. 또한 농약 복용뿐 아니라 직업성 농약 중독의 경우에도 농약의 살포과정, 농작업의 특성 및 농업인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고려한 종합적인 예방책이 강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