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역학(radiation epidemiology)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방사선이라는 환경인자의 노출과 이로 인한 건강 영향을 집단적 비교를 통해 파악하는 역학의 한 전문분야이다. 방사선 역학에서 ‘방사선’이라는 단어가 ‘역학’보다 먼저 나오면서 학문 영역이 방사선학에 가깝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마치 겉옷 때문에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간과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방사선 역학은 다른 방사선 학문 분야와 같이 방사선이라는 물질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방사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과는 구별되는 특성(집단적 사고(population thinking)와 집단 비교(group comparisons))을 가진 역학이라는 학문 분야이다.
방사선 역학의 분야(field)는 방사선 노출 형태에 따라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즉 방사선 종사자들의 직업적 노출에 대한 분야, 일반인이나 환자들의 의료노출 분야, 사고로 인한 노출 분야, 원폭 생존자 연구, 자연방사선 노출 연구 분야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노출 선량을 통해 인구집단에서의 건강 위해도를 추정하는 연구 분야도 포함한다. 따라서 방사선 역학은 저선량만이 아니라 고선량 노출 상황, 그리고 어린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구집단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환경 및 직업역학 연구가 특정 집단에서 저노출 상황에 국한된 결과를 보여주는데 반해 방사선 역학은 넓은 범위의 노출 영향을 다양한 인구집단에서 보여준다는 장점을 가진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방사선 역학연구의 일부 사례는 표 7.1과 같다.
표 7.1 주요 방사선 역학 연구 종류들
방사선 역학은 인구집단에서 방사선에 의한 건강 영향의 이해를 넓히고 방사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이바지하여 왔다. 즉 방사선 역학연구는 방사선 노출 수준 및 관련 위험요인 파악, 방사선 노출과 건강 영향과의 관련성 규명, 발암 및 질병 발생기전 규명, 정교한 노출평가 방법의 적용, 방사선의 유용성과 위해에 대한 균형 있는 평가, 방사선 방호 기준 설정 등에 기여하고 있다.
방사선 역학 연구를 통해 그동안 밝혀진 악성종양에 대한 주요 학문적 결과들로는 1) 방사선에 단 한 번의 노출도 평생 암 위험도를 증가시킨다 2) 적은 양의 방사선에 여러 번 노출되어도 암 위험도를 증가시킨다 3) 나이가 어릴 때 노출될수록 방사선의 위험도가 크다. 4) 태아 노출은 소아 노출보다 위험도가 크지 않다 5) 유전 영향은 관찰되지 않았다. 6) 여성이 남성보다 민감하다 7) 방사선의 위험도는 각 장기별로 다르다 등이다. 이러한 결과들은 다른 학문 분야와 달리 대규모 인구집단을 오랜 기간 추적하여 직접 관찰하는 역학 연구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방사선 역학 결과들은 일반적인 역학 및 보건학 분야에도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시 세계무역센터 붕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발암물질에 노출되었고 이후 발생한 악성종양이 당시 노출과 관련된 것인지를 평가하기 위해서 악성종양의 최소 잠복기를 설정한 바 있다. 이때 고형암, 혈액종양, 갑상선암의 경우 방사선 역학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각각 4년, 0.4년, 2.5년으로 설정하였으며, 그 외 중피종은 석면 연구로부터 11년으로, 소아암은 소아암 환자 생존자 연구에 근거해 1년으로 정한 바 있다. 또한 일본 원폭 생존자 코호트 자료 분석을 위해 Epicure라는 별도의 전문적인 통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방사선의 위험도 산출을 위한 기본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용량 자료의 인년(person-year) 산출에 장점을 갖고 있어 방사선 역학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코호트 자료 분석해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방사선 역학은 방사선 분야를 넘어 일반적인 역학 및 보건학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