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농약 중독(occupational pesticide poisoning)은 농업인 외에도 농약 제조근로자, 농약 운반 및 폐기 근로자, 농약 살포 대행 근로자 등 농약을 취급하고 있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발생할 수 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운영하는 농약 중독 감시체계의 자료에 의하면 직업성 농약 중독에 의해 보고된 환례 중 농업인은 절반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농업 이외의 직종으로 보고된 바 있다. 농약을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군인 농업인들 중에서도 농약 중독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조사된 사람들이 전체 농업인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농약 중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등에 따라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도 농업인에서의 직업성 농약 중독의 규모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농약 중독 감시체계를 통해 1998- 2005년도에 농작업자 10만 명당 연평균 54명의 농약 중독자를 보고하였다. 에콰도르에서도 1991-1992년도에 감시체계를 통해 10만 명당 171명의 농업인이 농약 중독으로 보고되었고, 코스타리카에서는 1986년도의 병원 기록을 통해 10만 명당 15명의 농업인을 농약 중독으로 보고하였다. 한편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니카라과 농업인의 6.7%, 브라질은 6.5%, 중국은 8.8%, 베트남은 31%, 인도는 83.6%의 농업인이 1년 동안 급성 농약 중독에 해당하는 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국가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실제로 발생되는 농약 중독의 차이뿐 아니라 각 나라별 농약 중독을 정의하는 방식과 조사 방식 및 범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각 나라별 발생률을 직접 비교하는 것에는 많은 제한점이 있다.
한편 국내에서 농업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직업성 농약 중독률(5.7-86.7%)이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차이는 농약 중독에 대한 정의, 노출 형태 및 노출량, 조사 연도 및 대상자의 차이 등으로 인한 것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직업성 농약 중독률을 제시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내 직업성 농약 중독률을 파악하기 위해서 표본조사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 농약 중독 표본조사는 남성 농업인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실시되었다. 그 이유는 직업성 농약 중독은 남성에서 여성보다 높게 보고되어 왔으며, 남성은 전통적으로 농작업 시 여성보다 농약 살포 작업에 많은 시간과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농작업 참여도 실제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여성에 대해서도 농약 중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내 남성농업인 표본조사는 2010년 한국농촌가구에 등록된 농가들을 모집단으로 하였으며 가구수, 연령별 가구원수 그리고 아파트 거주 분율의 3가지 변수를 기준으로 모집단을 층화한 후 약 2,000명의 표본 규모를 설정하였다. 표본수는 예측되는 농약 중독 유병률 및 오차범위와 연구 예산 등을 고려하여 설정되었다. 비례추출법에 의해서 모집단내의 67개의 읍ㆍ면을 추출하였고, 각 읍면에서 3개의 마을이 선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선정된 197개의 마을에서 각각 10개의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수행되었다.
표본조사 결과 201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남성 농업인에서 급성 농약 중독은 약 209,512명(농업인 100명당 24.7명)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표 2-9). 대다수가 농약 살포로 인한 경미한 임상증상을 호소한 경우들이지만 이 중 18,319명(농업인 100명당 2.2명)은 농약 중독으로 인해 병의원을 방문하여 외래치료를 받았고 4,278명(농업인 100명당 0.5명)은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한편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농약 중독으로 입원한 경우는 약 6.1%로서 이를 전체 남성 농업인으로 추산하면 52,068명에 해당된다. 이 결과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표성을 지닌 직업성 농약 중독 발생률을 보고하였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직업성 농약 중독 발생률 규모는 비록 직접적인 비교에 제한점이 있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결과와 비슷하고 미국, 니카라과, 브라질의 결과보다 높은 수준이다.
<표 2-9> 국내 남성 농업인 표본조사에서 치료형태별 직업성 농약 중독률(%), 2010
a치료형태의 결측치로 인해 각 범주의 합과 전체 환자수에는 차이가 있음
출처:Lee WJ et al. Incidence of acute occupational pesticide poisoning among male farmers in South Korea. American Journal of Industrial Medicine. 2012.
직업성 농약 중독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설문을 통해서 농약 중독의 경험을 묻거나 농약을 살포한 후의 증상을 물어보는 방법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특히 병의원 치료 이전 단계의 경미한 농약 중독자를 선별하거나, 직업성 농약 중독의 발생 규모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중독경험이나 증상이 자가보고(self-reporting)에 의한 것이므로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 따라서 농약 중독 증상 및 징후의 정보를 활용하되 농약 중독 정의를 위한 합리적인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표 2-10)와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표 2-11) 프로그램에서는 광범위한 문헌고찰과 전문가 자문을 통해 증상 및 징후를 이용하여 농약 중독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기준은 농약에 노출된 것에 대한 정확성, 농약 중독 증상 및 징후, 그리고 이 둘의 인과관계성을 기준으로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기준은 농약 중독 환자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보다 농약 중독의 가능성이 높고 낮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한편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농약 노출, 건강영향, 인과관계 요인들을 <표 2-11>과 같이 4가지로 나누고 각 기준들을 조합하여 정의한다. 즉 농약 노출, 건강영향, 인과관계 모두가 1점인 경우 ‘확실한 환례’로 정의하고, 농약 노출만 2점인 경우이거나 건강영향만 2점인 경우는 ‘환례로 추정’한다.
<표 2-10> 세계보건기구의 농약 중독 분류기준
출처:Thundiyil JG et al. Acute pesticide poisoning:a proposed classification tool. Bulletin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2008.
<표 2-11>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농약 중독 감시체계에서의 농약 중독 분류기준
출처:NIOSH. Pesticide-Related Illness and Injury Surveillance:A How-To Guide for State-Based Programs. 2005.
일반적으로 농약의 급성 노출에 의한 신체영향은 농약의 화학적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독성 기전은 유기인계 및 카바메이트계 농약에 의해서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의 활성도가 감소되는 것이다. 이들 농약이 콜린에스테라제와 결합하여 콜린에스테라제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신경근접합부(neuro-muscular junction)에 아세틸콜린이 과잉 축적되어 처음에는 신경 전도를 자극하다가 피로현상에 의해 점차 신경전달이 마비된다. 축적된 아세틸콜린과 농약들은 무스카린(muscarine) 및 니코틴(nicotine) 수용체에 대한 자극으로 호흡곤란, 구토, 동공 수축, 눈물ㆍ땀ㆍ침 분비물의 증가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유기인계 증상은 DUMBELS(Diarrhea, Urination, Miosis, Bronchospasm, Emesis, Lacrimation, Salivation)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상증상은 노출량, 농도, 접촉시간, 노출경로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24개 국가에서 6,35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농약 중독에서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구토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영국에서 약 4,000명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보고된 증상들이 농약의 독성학적 성질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보고하였으며, 우리나라 농업인들에서도 작업 시 농약 중독과 관련되어 농약 종류별로 다르게 나타나기보다는 어지러움, 메스꺼움, 구토, 피로감, 두통, 피부 가려움, 눈앞이 흐려짐 등 비특이적인 증상이 흔하게 관찰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특정 물질에 노출되는 복용이나 사고와 달리 농작업 시에는 여러 가지 농약들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농약 성분별 특이적 증상보다는 비특이적으로 혼합된 증상들을 먼저 호소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농약 중독에 의한 증상은 대체로 주관적이고 비특이적이어서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기존에 수행된 연구들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들마다 농약 노출 이후에 호소하는 증상의 종류와 횟수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국외 연구에서의 증상을 우리나라 농업인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제한점이 있다. 이처럼 농약 중독증상이 갖는 주관성은 많은 연구에서의 공통적인 한계점이지만 경미한 상태의 중독자를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주관적이고 비특이적인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된 기준을 설정하여 중독자를 정의한다면 보건학 연구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임상증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 노출과의 연관성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임상증상과 별도로 농약 노출이 있었는지를 묻는 절차가 중요하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노출이 먼저 일어났을 때 농약 중독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는 스스로 농약 노출 때문에 중독이 발생되었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농약 중독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노출과 증상 및 질병을 스스로 판단하는 주관성 때문에 개인별 차이가 클 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 농업인 표본조사에서는 먼저 21개의 임상 증상(메스꺼움, 목이 따가움, 콧물이 남, 두통, 어지러움, 불안감, 과도한 땀분비, 근무력, 피부가 가렵거나 화끈거림, 눈이 따가움, 눈물이 많아짐, 피로감, 구토, 설사, 호흡곤란, 시야 흐려짐, 손발 저림, 말 어눌해 짐, 가슴이 답답함, 사지마비, 실신) 유무를 조사하였고 다음으로 이러한 증상이 농약 노출 48시간 이내에 발생된 것인지를 물었으며,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를 직업성 급성 농약 중독으로 정의하였다. 임상증상 자체에 대해서는 과대 보고가 있을 수 있으나 노출 여부 및 인과성 항목을 동시에 적용하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농약 중독의 인과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대한 전문가적 평가가 한 요소로 포함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기억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얼마의 기간을 두고 농약 중독 경험을 물어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도 보건학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심한 질병의 경우일수록 정확히 기억하는 경우가 높기 때문에 심한 재해의 경우 12개월까지는 재해율 산출에 영향을 주지 않은 기억력을 보인 반면 경미한 경우는 3개월이 지나면 기억력이 유의하게 감소된다고 보고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농약 중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증상만 호소한 경우에는 기억력 손실로 인해 과소 보고될 가능성이 있으나 입원 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정확히 보고되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경미한 농약 중독 증상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는 지난 1년간으로 묻는 것보다는 농약 살포시기에 지난 1개월 동안의 중독증상과 작업 상황을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약 중독의 개념은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입원 및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매우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이처럼 이질적인 농약 중독을 동일한 범주로 취급하는 것은 질병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농약 중독을 중증도(severity)에 따라 분류하여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며 분류기준으로는 임상증상, 치료형태, 작업손실 정도 등이 있다(표 2-12).
<표 2-12> 농약 중독의 중증도 분류 방법
우선 증상의 종류를 구별하여 중증도를 구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두통보다는 마비가 오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가 심한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증상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증상의 종류를 통해 중증도를 구별하는 방법은 나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별은 이미 농약 중독의 중증도를 구분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시된 바 있으며 베트남 및 인도 등 다른 나라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등급화하였다. 보다 간단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치료 유형에 따른 분류이다. 즉 단지 증상만 있었던 경우, 자가 치료(약복용 포함)를 했던 경우, 외래를 이용한 경우, 심해서 입원까지 했던 경우들을 설문으로 파악하여 중증도 분류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 농업인 조사에서 증상을 기준으로 농약 중독의 중증도를 구별하면 전체 중독률 24.7% 중에서 경미한 경우는 16.0%, 중간 정도는 7.9%, 심한 경우는 0.8%였다. 치료형태별로는 미치료 78.8%, 자가치료 7.6%, 외래치료 9.8%, 입원치료 2.0% 순으로 나타났다. 증상이 심각할수록 외래 또는 입원 치료 분율이 높아, 경미한 증상의 경우 입원치료가 0.3%, 외래치료가 7.5%인 반면 심각한 증상의 경우 각각 14.3%, 21.4%였다. 또한 농약 중독으로 인해 입원한 경우에 외래나 자가치료한 경우보다 작업손실 일수가 많아짐을 확인함으로서 중증도와 작업손실 일수가 비례함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중독자의 개념이 이질적이라고 하더라고 중증도별로 파악한다면 보다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며 중증도별 규모 파악은 보건학적 대책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미국의 농약 중독 감시체계에서도 외래 치료 일수 또는 입원 일수를 기준으로 중증도를 분류한 바 있다.
또한 질병 이환 시 약을 복용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도 중증도 분류에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식과 농약 노출 연구에서 천식의 중증도를 구분하기 위해 약물 복용 또는 천식으로 인한 입원 여부의 변수가 활용될 수 있으며, 악성종양의 경우에는 병기(stage) 정보가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중증도 변수들은 농약 노출과 질병의 양-반응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보건학 연구에서 가능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질병의 중증도에 대해 구분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비록 정확한 정보는 아닐지라도 중증도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가장 많은 중독을 일으킨 농약을 파악하는 것은 실질적인 예방대책을 세우기 위해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흔히 가장 독성(toxicity)이 강하거나 사용량(amount)이 많은 농약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가장 자주(frequency) 사용하는 농약이 중독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시 말해 농약의 사용 빈도 즉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냐가 농약 중독에 더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농약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농약 살포 횟수 자체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농약 중독의 예방을 위해 각 작목별 농약 살포 횟수 자체를 줄이려는 농학적 연구들도 중요하다.
국내 남성 농업인 표본조사에서 가장 많은 중독 원인물질로 보고된 물질은 cartap, paraquat, fenobucarb 등이다(표 2-13). Cartap은 네레이스톡신이라는 갯지렁이에서 추출한 살충성분을 합성한 살충제이고 fenobucarb은 카바메이트계 살충제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작목인 벼에서의 방제(pest control)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농약들이다. Paraquat은 국내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비선택적 제초제 중의 하나이다. 한편 다른 아시아 국가 및 남미국가에서는 유기인계 농약이 농약 중독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각 나라별, 지역별, 조사 시기별, 대상자 등의 차이와 더불어 작목별 농약 사용에 의한 차이라고 판단된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감시체계 결과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감시체계 결과에서도 가장 흔한 중독을 발생시키는 농약의 종류에 많은 차이를 보였다.
<표 2-13> 국내 남성 농업인 조사에서 중독을 일으킨 농약과 흔히 사용된 농약의 순위 비교
질병의 위험요인(risk factor)을 찾아내는 것은 역학연구의 한 분야로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기여하고 농약 중독의 예방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농약 중독의 위험 요인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위험요인별로 교차비(odds ratio) 혹은 비교위험도(relative risk)라는 지표를 사용하여 어떤 요인이 중독의 위험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또는 감소시키는지로 표현된다. 즉 농약 중독 여부를 종속변수로 하고 성, 연령, 작업형태 등을 독립변수로 하는 모델을 구축한다. 만약 종속변수가 단순히 중독인지 아닌지의 두 가지 경우보다 많은 경우로 분류된다면, 예를 들어 중독의 중증도(비중독, 경미한 중독, 심한중독 등)별로 위험도를 산출한다면 다항로지스틱(multinomial) 분석을 적용한다.
지금까지 농약 중독의 위험도를 높이는 것으로 인구학적 및 작업 관련 요인들이 보고되었지만 연구 대상자와 시기가 달라 연관성 여부 및 크기가 일관적이지 못한 경우들이 많다. 또한 지금까지 파악된 객관적인 요인들 외에 보다 심층적인 사회심리학적 요인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실시된 적이 없다. 그리고 직업성 중독요인과 자살 목적 복용의 위험요인들과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몇 가지 요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자살 복용에서는 고연령과 낮은 교육수준이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였지만 직업성 중독의 경우는 반대 양상을 보인다.
가) 인구학적 요인
개인적 특성들도 농약 중독과 많이 관여하고 있어 젊은 연령, 남성, 높은 교육수준 및 경제상태일수록 직업성 농약 중독의 위험이 높다. 고령으로 갈수록 위험도가 감소하는 것은 훈련효과(training effect)와 더불어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농작업을 더 많이 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남성이 더 많은 농약 작업을 하므로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농약 중독에 많이 이환되는 공통성을 가진다. 그러나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여성농업인에서의 급성 농약 중독 발생률이 남성보다 높았다. 그것은 미국에서 여성들이 소규모 작업 또는 농기계를 덜 사용하는 작업에 종사하는데 이런 작업들이 오히려 실제 농약 노출은 많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들의 경우 중한 질병만 보고하는 경향이 있어 상대적으로 여성에서 중독률이 높게 보고될 수도 있다. 한편 교육 및 경제수준이 높은 사람들에서 위험도가 높게 나오는 것은 이들이 대체로 많은 경작면적을 소유하고 있어 농약 살포의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내 남성 농업인 표본조사에서 50대 미만이 가장 중독률이 높았으며 연령 증가에 따라 감소하였다. 이것은 젊은 연령층에서 작업을 많이 하고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아 같은 중독 상태에서 증상 보고 자체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농약복용으로 인한 중독사망과는 반대이다. 특히 노인들은 같은 수준의 농약에 노출되더라고 젊은 층보다 병원에 입원하기 쉽고 사망률도 높은 취약집단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20-30대에서 중독률이 가장 높은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연령별 중독률의 차이는 각 나라 농업인구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개인이 갖고 있는 중독의 의도성은 중독 이후의 건강 상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살 목적으로 농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의도적인 중독의 경우 비의도적인 중독보다 대체로 예후가 나쁘다. 농약에 대한 보관이 철저하지 못해 음료수로 오인해서 복용하는 경우들도 있다. 농약 보관 및 관리가 철저한 나라들에서는 복용에 의한 경우는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농약 살포로 인한 중독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농약 중독과 관련된 요인으로 개인적인 염려(concern)가 행위를 바람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염려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보호구 착용률도 높고 살포 시 안전행위들도 잘 지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한편 교육을 통해 보호구 착용률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으나 개입 연구를 통해서 교육이 유용하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하고 있어, 단지 교육만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 또는 문화 등과 함께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작업 관련 요인
농약 작업 관련 요인들이 농약 중독의 위험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준다. 즉 농약 사용량이 많을수록, 농약 살포 경력이 오래 될수록, 연간 농약 살포일이 많을수록, 연속 살포 일수 및 1일 살포 시간이 길수록,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을수록, 위생행위를 지키지 않을수록 농약 중독과 유의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여러 농작업 중에서 특히 비닐하우스 작업, 고랭지 농작업, 과수재배 작업들이 농약 중독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지면적이 클수록 농약 살포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으로 농약 중독의 위험도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혹 대규모 경지면적을 소유한 농업인의 경우 직접 살포보다는 농약 살포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있어 반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농약 중독 시 작업형태는 대부분 농약을 직접 살포할 때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농약을 섞을 때 또는 이동 중에도 발생할 수 있다. 계절별로는 농약 작업이 많은 여름철에 중독 위험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농약 중독이 여름철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도 공통적인 현상으로 농번기에 특히 중독 예방을 위한 사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된다.
작업 시 개인보호구의 미착용은 일관되게 중독의 위험성을 높인다. 특히 장갑과 마스크의 미착용이 다른 보호구보다 위험도의 크기를 더욱 증가시킨다. 이것은 농약의 피부와 호흡기 흡수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갑 및 마스크 착용이라는 것 자체가 직접 의미하는 것 외에 간접적으로 다른 상태를 암시할 수 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해 내는 것이 종합적인 예방대책을 위해 중요하다.
농약 살포 시 위생행위 준수 여부도 중독 위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바람을 등지지 않고 살포하는 경우, 한낮에 살포하는 경우, 농약 사용법과 용량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 중독의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위생행위 수칙을 준수하고 보호구를 올바로 착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각 보호구 착용 및 위생행위 수칙 준수여부를 조합한 위험행동점수(behavior risk score)를 적용하여 점수가 높을수록 농업인에서 농약 중독과 연관성이 있음을 평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에 의하면 어떤 한 가지 요인이 중독 여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요인에 국한된 예방 대책이 아니라 전체적인 작업 과정에서 안전 환경(safety climate)를 평가하고 증가시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연구들이 직업역학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안전 환경 관련 점수는 연령, 성, 교육수준, 업무형태 등과는 큰 차이가 없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대규모 사업장보다 안전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낮은 안전환경 점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작업이 소규모 자영농임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특히 소규모 농가에 대한 안전 문화를 증진시키고 이를 통한 농약 중독 예방사업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