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농약에 의해 급성 중독 및 만성 건강영향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농약으로 인한 건강 위험에 대한 규모와 연관성을 구명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보건학적 연구들이 실시되어 왔으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약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존 국내외 연구들을 근거로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농약은 많은 종류들이 있으며 성분이 계속 변화되고 있어 그동안 우리가 어떠한 농약에 얼마만큼 노출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농약들에 노출될지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농약에 대한 정보들이 종합적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국가기관 및 농약 제조사들의 정보 공개 및 상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농약의 유효성분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제 노출되는 비활성물질이 포함된 농약 제품의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보건학적 관점에서 중요하다.
급성 농약 중독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수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규모가 큰 사회적 문제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감시를 통해 농약 중독 자체에 대한 발생 규모와 양상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농약 중독자들에 대한 기존의 임상적 연구들과 함께 보건학적 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농약 중독 환자들에 대한 역학적 접근이 연구계획 단계부터 접목되어야 한다. 또한 농약 중독 환자들에서의 생물학적 시료를 통한 분자 역학적 접근은 우리나라와 같이 상대적으로 중독 환자가 많으면서 의료체계 및 기술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주제이다. 그리고 급성 농약 중독의 예방과 관리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연구 및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개입 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
농약의 노출 평가는 건강영향과의 연관성 평가를 위해서 중요하다. 특히 개별 농약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여 각 농약이 인구집단에 주는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농약 관리를 위해서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진행되고 있는 환경 및 개인 농약 측정 자료를 보건학 및 역학적 관점과 연계하여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종합적인 농약 노출 평가를 위해서는 농약에 대한 직업적 노출 뿐 아니라 환경 노출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농약의 환경적 노출 자체를 평가한 연구가 부족할 뿐더러 그로 인한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조사되지 않았다.
한편 식품을 통한 환경 중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이 우려하는 수준에 비해서 건강영향 위험도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다양한 환경적 노출에 대한 자료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며, 특히 산모와 어린이 그리고 유전적 취약집단에게는 적은 양의 환경적 노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예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식품 및 기타 환경 요인에서의 농약 오염 정도를 직접 측정한 값과 개인별 노출량 평가를 포함한 종합적인 위해도 평가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약 노출에 의한 만성 건강영향들로서 많은 질환들이 연구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연관성이 의심되는 사례들이 간혹 보고되고 있다. 비록 인과관계에 논란이 있는 상황이지만 직업적 노출자들에게 만성질환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은 기존 연구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만성 건강영향의 평가를 위해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역학조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농업인건강연구와 같은 대규모 코호트도 필요하지만 농업총조사와 같은 기존의 전국적인 농업인 조사를 잘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간략한 형태로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보다 자세한 내용은 표본 농업인에 대해서 조사하는 2단계 연구가 적용될 수 있다. 또한 농약 노출 감소를 위한 개입 연구를 통해서 농업인들의 실질적인 건강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전향적 코호트 연구와 개입 연구가 결합된 모델이 심도 있게 추진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농약으로 인한 우리 사회에서의 질병 부담과 경제적 손익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농약 사용으로 인해 곡물 생산량 증가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건강 및 환경에 소비되는 사회적 비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약의 사용은 경우에 따라 불필요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비경제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비록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가정에 근거하여 계산되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농약의 사회적 필요성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농약 사용으로 인한 사회의 이익은 최대화시키고 공중보건학적 비용은 최소화하는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하다.
농약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농업인을 비롯하여 일반 국민들에서 농약으로 인한 사망 및 질병을 발생시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실에서 농약 노출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만 농약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농약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적합하게 사용하면서도 농약에 의한 건강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농약에 의존된 편의 위주의 습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적인 건강생활이 가장 중요하고 질병에 걸린 경우에만 치료제를 사용하듯이,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을 보다 지속 가능한 형태의 생활습관으로 변화시켜 나가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농작업을 포함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다 건강한 형태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