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은 한 물질에 4가지 이름을 동시에 갖는다. 즉 화학물질을 의미하는 화학명,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사용되는 일반명, 농약의 형태 정보를 일반명에 추가하여 표기하는 품목명, 그리고 제조사가 판매를 위해 붙인 상품명 등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자살 목적으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패러쾃 농약은 화학명이 1,1′-dimethyl-4,4′-bipyridinium이고 일반명은 paraquat dichloride, 품목명은 패러쾃 디클로라이드 액제이며 상품명은 제조사에 따라 그라목손 인티온, 뉴속사포, 파라손 골드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명칭의 이해는 각 농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 특히 상품명을 통해 어떤 화학물질인지를 파악하고 개별 농약의 독성 및 인체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농약의 종류는 <표 1-3>과 같이 분류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질 수 있다. 사용목적에 따라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등으로, 화학성분에 따라서는 유기인계, 유기염소계, 카바메이트계, 피레스로이드계, 페녹시계 농약 등으로, 제형에 따라서는 유제, 수화제, 액제, 수용제, 분제, 입제, 훈연제 등으로 표현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독성기준에 따라서는 맹독성(Class Ia), 고독성(Class Ib), 보통독성(Class II), 저독성(Class III), 미독성(Class U)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체계는 유동적인 것으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형태가 변화됨으로 인해 분류가 달라질 수 있다. 다양한 농약들 중 건강과 관련되어 그동안 주로 연구되어 온 농약은 유기합성농약으로서의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등이다.
<표 1-3> 농약의 분류
한 가지 연구 주제에 반드시 한 가지 연구 형태만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동일한 가설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론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같은 주제의 연구를 일련의 서로 다른 연구 방법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연관성에 대한 근거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내 농약과 암위험도에 대한 역학 연구는 1970년대 생태학적 연구를 시작으로 1980년대 환자-대조군 연구, 1990년대에 와서는 전향적 코호트 연구를 진행하였다. 역학에서의 연구 방법론은 단지 수단으로써의 방법적 접근을 넘어,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 내용을 합리적으로 찾아 나가는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농약은 유효성분(active ingredient)과 비활성물질(inert ingredient)이 섞여져 있는 형태로 사용된다. 따라서 농약의 건강영향을 언급할 때 흔히 유효성분만을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유효성분만이 아니라 비활성물질에 의한 건강영향이 합쳐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유효성분은 농약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농약의 특성 및 종류가 결정된다. 농약에는 한 가지 유효성분만이 아니라 여러 유효성분의 농약들이 혼합된 형태들도 많아 신체영향이 복잡하게 나타날 수 있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등록된 농약의 약 30%는 2가지 또는 3가지의 유효성분들이 함께 섞여 있는 혼합제이다.
비활성물질은 부성분(co-formulants) 또는 첨가제라고 불리기도 하며 농약의 기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용제, 안정제, 계면활성제 등을 말한다. 비활성물질의 종류에 따라 농약의 제형이 결정되며 일반적으로 농약에서 차지하는 분율이 유효성분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비활성물질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물질들이 포함될 수도 있다. 즉 비활성물질은 유효성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독성을 증가시키거나, 농약의 피부 흡수를 증가시키고, 환경 중 농약의 이동과 잔류를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비활성물질이 유효성분과 결합한 제형으로 사용될 때 유효성분 자체보다 더 심하거나 예기치 않은 건강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비활성물질의 성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유효성분과는 달리 구체적인 성분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미국의 경우 비활성물질로 사용되는 성분의 종류는 유효성분의 종류보다 3배 이상 많으며 벤젠, TCDD, 포름알데하이드 등 독성 물질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농약에 의한 종합적인 건강 및 환경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비활성물질에 대한 정보 공개에 많은 노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농약제품 자체의 종합적 건강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유효성분 및 비활성물질에 대한 연구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농약의 독성을 평가하여 분류하는 기준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의 독성분류이다. 1975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쥐(rat)를 대상으로 한 급성 경구 및 피부 독성실험에 근거하여 LD501를 산출하고 이 값에 따라 농약의 독성을 분류하였다. 2009년에 개정된 분류 기준은 <표 1-4>와 같다.
<표 1-4> 세계보건기구의 농약 독성 분류 기준
출처:WHO. The WHO Recommended Classification of Pesticides by Hazard. 2010.
그런데 이러한 분류는 단지 동물의 급성독성 평가를 근거로 설정된 것으로 실제 사람에 대한 독성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 2002년에서 2008년까지의 농약 복용 환자 약 9,000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고한 바에 의하면 세계보건기구 분류에서 보통독성으로 분류된 농약이지만 실제 사람들에게는 맹독성 또는 고독성 농약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치명률을 보이는 농약들(예를 들어 paraquat, endosulfan, dimethoate 등)도 있었다.
이처럼 동물 실험에서의 독성에 근거한 세계보건기구의 농약 독성 분류체계를 사람에 대한 농약 독성 관리 기준으로 활용하는 데는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보건학적 입장에서 실제 사람들에게 치명률이 매우 높은 농약들이 보통독성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패러쾃 농약의 경우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보통독성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사람에서는 소량을 복용하더라도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분류기준 자체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한 세계보건기구의 농약 독성분류가 농약의 유효성분만을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인 반면 인구집단에서의 독성효과는 유효성분과 비활성물질이 혼합된 실제 사용되는 농약 제품에 의해 이루어지는 차이도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의 독성 분류는 단지 생태 및 환경영향의 일차적인 평가를 위해서 참고로 활용되어야 하며 인구집단에 대한 기준으로 직접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독성분류는 각 국의 농약 규제 정책과 연계되어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분류체계에 있어서 사람에 대한 독성 정보를 최대한 반영하여 실제 인구집단에 올바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현재까지 보고된 농약 중독 환자들의 치명률을 기준으로 등급을 재분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농약을 올바르게 분류하려면 동물이 아닌 농약에 중독된 환자 및 노출 인구집단에 대한 역학적 자료의 수집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1 Lethal Dose 50%의 약자로서 시험물질을 실험동물에 투여하였을 때 50%가 죽는 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