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에 대한 건강영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농약에 노출된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필요하다. 같은 종류의 농약에 노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작업 및 생활환경의 차이로 인해 농업인에게 나타나는 건강영향과 다른 농약 노출 집단(예를 들어 골프장 종사자, 정원사 및 농약제조업 근로자 등)에서의 건강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최종적인 건강영향은 농약 자체의 효과뿐 아니라 다른 물질 또는 신체 조건에 따른 상호작용이 더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약과 건강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농약에 노출된 서로 다른 인구집단들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약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은 농약에 직업적으로 장기간 노출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집단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사업장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외국의 농약 제조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망률 및 암 발생률을 살펴보는 코호트 연구들이 주로 많이 실시되었다. 즉 몬산토에서는 alachlor 제초제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악성종양 발생 및 사망과 관련이 없음을 보고하였으며, 다우케미칼 회사에서는 2,4-D 또는 chlorpyrifos 농약 제조 근로자들에 대한 역학적 연구들이 실시되었다. Chlorpyrifos 농약 제조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신경학적 검사 및 생물학적 모니터링과 관련된 연구들이 실시된 바 있으며, 작업 중 노출로 인해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가 억제되지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신경병변은 관찰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그리고 2,4-D 사업장 근로자들에 대한 추적 연구를 통해서는 비호지킨림프종 발생이 유의하지 않은 수준에서 증가하였고 전립샘암은 유의하게 감소함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사업장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해당 회사의 농약이 건강영향과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결과 해석 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농업인건강연구에서는 alachlor 살포 근로자들에서 혈액종양이, chlorpyrifos 살포 근로자는 폐암이 유의하게 증가되었으며, 농약 사업장 근로자들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에서는 페녹시계 제초제(2,4-D)에 노출된 근로자에서 백혈병과 전립샘암 위험도가 유의하게 증가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어 사업장에서의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
그 외 농약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노출 평가에 대한 연구, 생체지표(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 유전독성, 호르몬), 생식기능, 피부 및 안질환 등에 대한 단면적 연구들이 실시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농약 노출 근로자에서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의 억제가 관찰되었고 이러한 결과가 개인별 PON1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여러 농약에 동시에 노출된 농약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DNA 손상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한편 농약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경전도 기능 검사에서는 대체로 유의한 영향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한편 최근 37개의 농약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의 코호트 연구를 종합한 결과에 의하면 전체 사망률은 일반 주민보다 낮았으나 일부 암(구강, 식도, 직장, 폐, 후두, 혈액종양)의 사망률은 유의하게 높아 농약 살포 농업인에서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질병 및 사망 위험도는 농업인보다 크지 않았는데 이는 사업장 근로자들이 농업인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이고 농약 노출이 적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국내에서 농약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의 노출 상태 및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적 연구는 거의 보고 되지 않았다. 농약 성분은 사업장에서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작업환경측정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노출에 대한 기본 자료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국내 4곳의 농약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chlorpyrifos 농도가 국내 허용 기준보다는 낮았으나 미국의 기준보다는 초과되었고 작업 형태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농약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소규모 제조업체가 많으며 근로조건도 취약하여 농약 노출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 사업장 근로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젊고 근무기간도 짧아 장기간의 추적조사 형태보다는 자세한 생물학적 영향지표를 반복 조사하는 역학 조사가 우선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농업인들은 농약 노출과 만성 건강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농업인들은 농약 이외의 여러 유해요인에 동시에 노출되어 복합적인 건강영향이 나타날 수 있지만 농업인의 건강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농약에 의한 건강영향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 국내 농업인 현황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였으며 농업은 핵심적인 기반 산업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업화에 따라 농가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2011년 현재 296만 명(약 116만 가구)으로 전체 인구의 6.0%(전체가구의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178만 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아직도 단일 산업으로서 가장 많은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다. 농업인구는 1970년도에 약 1,440만 명에서 2000년도에 400만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후에는 완만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전체 농가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현재 33.7%로 전체인구의 고령화율 11.4%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농가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농가의 가구원 수는 4인 이상 농가는 감소한 반면, 1-2인 농가는 점차 증가하고 있어 1인당 노동력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수적 변화와 더불어 농업의 내용면에서 전통적인 벼·보리 농사형태가 감소되고 시설원예 및 축산농가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1년 농가의 영농 형태별 분포를 보면 논벼 43.7%, 채소 21.7%, 과수 15.1%, 식량작물 7.8%, 축산 5.7%, 특용작물 2.4% 등의 순이다. 경지규모별로는 중간계층의 농가 비율이 감소하는 반면에 영세농과 대농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양극화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나) 농업인을 둘러싼 유해환경 요인
농업인은 작업 및 생활과 관련하여 다양한 유해환경에 노출되어 있다(표 5-11). 화학적 인자로서 농약, 비료 사용을 비롯하여 농기계에 사용되는 여러 화학물질 및 가축시설에서 발생되는 유해가스, 물리적 인자로서는 실외 작업 시 노출되는 고열, 한랭, 태양광선, 소음, 생물학적 인자로서는 동식물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면서 노출되는 유기분진, 세균, 곰팡이, 동식물 퇴비 등이 있다. 또한 농기계 사용과 농작업에 따른 재해 및 인간공학적 요인과, 스트레스, 경제적 불확실, 사회심리적 소외, 의료기관의 부족, 날씨의 불확실성 그리고 작업 관련 특수 유해환경(비닐하우스 등) 등의 환경요인들에 노출되어 있다. 즉 농업인에서의 유해 환경요인은 환경보건에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유해인자들이 관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표 5-11> 농촌지역에서의 유해 환경요인들
출처:Prince S. Overview of Hazards for Those Working in Agriculture. In:Lessenger JE, ed. Agricultural Medicine:A Practical Guide. Springer. 2006.
농작업 외에 농촌에서의 축산폐기물, 폐농자재, 생활쓰레기, 오폐수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 환경오염도 중요한 보건학적 문제이다. 특히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축산폐기물과 농촌의 오폐수는 농촌지역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에서 공장에서 배출되는 수질 및 대기오염 그리고 농촌에 위치한 폐광산으로부터의 중금속 오염도 중요한 환경 유해요인들이다. 미국에서도 수질오염이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과다한 비료사용에 따른 수질오염으로 음용수에 초과 함유된 질산염 흡수는 다양한 건강장해, 즉 태아성장 저하, 유산, 위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하였다. 각 환경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건강영향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농약과 건강과의 연관성을 파악할 때 농업인을 둘러싼 종합적인 환경요인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 농업인 사망 및 유병
농업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사망, 재해 및 직업성 질환의 발생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인은 일반 주민과 다른 작업 및 생활환경으로 인하여 일반인 및 다른 직업군과는 구별되는 질병 및 사망 양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농업인들은 전체 사망률, 심장질환, 전체 암 사망률, 일부 흡연 관련 암 사망률이 일반주민들보다 낮은 것으로 보고된 반면, 사고 및 호흡기 질환 그리고 일부 암(위암, 뇌종양, 전립샘암, 피부암, 입술암, 결체조직암,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비호지킨림프종 등 혈액종양)의 발생 및 사망률은 일반 주민들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농업인의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건강한 사람들이 선택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 외 농업인을 둘러싼 다양한 생활양식 및 환경의 차이들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편 건강근로자 효과를 보정한 후에는 전체 혈액종양, 피부암, 소화기계암, 전립샘암, 신장암, 뇌종양의 위험도가 증가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농업인 건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원이 부족하고 결과도 매우 제한적이다. 1996-2010년도 우리나라의 사망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농업인(임업·어업인이 포함되나 전체 5% 미만)의 전체 사망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서 2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5-12). 사망원인별로 살펴보면,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은 약 3배, 간질환 사망은 2배, 재해 및 자살이 각각 1.5배, 결핵으로 인한 사망은 1.4배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전체 암 사망에 있어서도 농업인은 일반 인구집단보다 1.4배 높은 사망률을 보였고 특히 식도암, 위암, 폐암, 간암, 백혈병, 뇌종양, 전립샘암의 사망률이 높았다. 한편 당뇨병, 파킨슨병 및 알쯔하이머병, 허혈성 심장질환, 폐렴 및 신부전 사망률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서 유의하게 낮았다. 농업인에서 높은 자살률은 외국에서도 많이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농약복용에 의한 자살이 특징적이다. 사회경제적 빈곤, 노령화, 소외감, 자살도구로서 농약의 쉬운 접근성 등이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인은 농기계 작업, 옥외작업 및 동식물 접촉 등 특히 재해발생과 관련이 높은 유해 환경요인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농업인들의 감소된 생리적 기전, 낮은 교육수준 등의 환경요인들도 농촌에서의 높은 사고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농업인 재해의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보고들에 의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높고 다른 직종의 사고보다 중증인 경우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표 5-12> 국내 농업인의 사망원인별 표준화사망비, 1996-2010
a결핵을 제외한 감염성 질환
한편 농업인이라는 직업 정보는 사망원인통계 자료에서 제한적인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농업에 종사했으면서도 농업인이라고 기입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따라서 단순히 농업인이라는 직업코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 농업인 분율을 활용하여 농업인이 많은 지역의 사망률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전국 250여 개 시군구별 농업인이 차지하는 분율을 5단계로 나누어 사망원인을 분석하였으며, 직업군 정보를 사용하였을 때와 비슷한 결과를 관찰할 수 있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통해 농업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남녀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1998년과 2005년 사이에 남성 농업인에서의 만성질환(구강질환 제외)에 대한 연령표준화율은 37.4%에서 34.8%로 감소하는 양상이었고, 여성 농업인은 52.7%에서 61.3%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남성 농업인의 주관적인 건강수준이 좋다고 답한 경우가 42.7%에서 57.7%로 증가한 데 반해 여성에서는 오히려 37.9%에서 28.7% 감소하였다. 여성 농업인의 경우 만성질환 유병률 자체도 높을 뿐만 아니라 유병의 양상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들 집단에 대한 건강수준의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질병별로는 특히 관절염과 디스크의 유병률이 타 직업군에 비해서 유의하게 높았다. 근골격계 질병 이외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이 타 직업군보다 높은 편이었고, 고혈압과 악성종양, 당뇨병 유병은 낮은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자료를 종합하면 우리나라 농업인은 일반 인구집단과 비교해서 사망률은 유의하게 높았으나(특히 전체 사망, 전체 암, 소화기암, 폐암, 자살, 만성하기도 질환, 간질환, 사고, 중독, 결핵 및 감염성 질환 등) 질병 이환 현황은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양상(특히 알러지 및 아토피 질환, 당뇨병, 심근경색증, 협심증 등)을 보인다. 농촌에서의 이러한 질병 및 사망 양상은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보다는 도시와 농촌지역에서의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중요한 원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농촌지역에서 전체적인 의료 이용 수준은 도시와 비슷하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중독 및 사고성 질환은 농촌지역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이지만 유병률 양상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농촌지역에서 중증도가 심한 사고 및 중독이 많이 발생하거나 취약한 의료체계로 인하여 같은 중독환자들의 사망위험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인 건강을 위해서는 일차적인 예방과 보건의료체계의 개선이 함께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