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으로 인한 질병 및 경제적 부담을 비롯해 사회적 부담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농약관리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일반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부담 평가를 위해서는 질병자의 숫자(number), 질병으로 인한 손실 일수(time), 그리고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cost) 등의 내용들이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국제적으로도 급성 농약 중독의 규모와 경제적 비용을 파악하는 수준에서 일부 연구들이 실시되었을 뿐이어서 보다 많은 연구들이 요구된다.
질병 부담을 평가하는 데 많이 활용되는 지표는 기여위험도(attributable risk)로서 특정 노출이 기여하는 정도가 얼마인지를 나타낸다. 기여위험도 값은 위험요인에 노출된 군과 노출되지 않은 군 간의 질병 발생률 차이로 산출한다. 예를 들어 농약 노출군과 비노출군 간의 악성종양 발생률의 차이를 통해 농약 노출군에서 악성종양이 얼마나 초과 발생하게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수량적 지표는 만약 농약 노출이 없었다면 악성종양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으로 공중보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농약으로 인한 질병의 기여 정도를 노출 집단만이 아니라 비노출 집단을 포함한 전체 인구집단으로 확대하였을 때는 인구집단 기여위험도(population attributable risk)라고 한다. 인구집단 기여위험도는 위험요인이 전체 인구집단에서의 질병 발생에 기여하는 부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약 해당 위험요인이 없다면 인구집단(노출 및 비노출 모두)에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이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전체 인구집단에서의 질병 발생률과 특정 위험요인에 노출된 군에서의 발생률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집단 내 발생률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위험요인의 비교위험도(relative risk)와 그 요인의 노출 분율(exposure proportion)을 근거로 추정하기도 한다. 인구집단 기여위험도 값은 위험요인의 비교위험도가 높거나 지역사회 내 노출 분율이 높으면 증가한다. 이러한 기여위험도와 인구집단 기여위험도는 각 나라의 보건 사업의 우선순위 결정에 필수적인 지표로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인구집단 기여위험도를 산출할 때 인구집단이 얼마나 노출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함께 필요하므로 비록 비교위험도가 같더라도 노출 정도에 따라 각 나라 및 인종별로 다른 값을 보일 수 있다. 또한 같은 흡연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폐암 발생에 대한 비교위험도는 우리나라와 미국 혹은 유럽의 결과와 다른 값을 갖는다. 따라서 인구집단 기여위험도 산출 시 다른 나라에서의 비교위험도 값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만약 어떤 위험요인이 독성이 강하지만 일부 소수 사람들에게만 노출되었다면 그 물질에 직접 노출된 집단에서의 위험도는 커서 기여위험도는 큰 값을 보이지만 전체 인구에서는 노출 정도가 적어 인구집단 기여위험도의 절대적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값을 보일 수 있다.
한편 인구집단 기여위험도 지표가 특정 요인에 의한 질병기여 정도를 저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직업 및 환경성 발암물질에 의한 암 발생의 인구집단 기여위험도를 산출할 경우 아직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발암물질, 혼합물질의 상호작용, 낮은 농도의 발암물질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인구집단 등을 포괄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농약에 대한 질병 부담 평가는 현재로서는 농약과 직접 관련된 농약 중독의 발생 및 유병률 자체를 통해 제시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급성중독은 농약 노출에 의한 것이 상대적으로 분명하나 만성중독은 농약과의 연관성이 분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농약의 질병부담 지표는 급성 농약 중독의 규모만을 나타내는 한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약으로 인한 인구집단 기여위험도를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농약 노출의 정도 그리고 농약 노출과 각 질환과의 연관성 연구를 통한 비교위험도 산출이 필요하다. 비록 농약과 만성질환과의 연관성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지만 향후 농약 노출에 따른 만성 건강영향으로 인한 질병 부담 연구들이 진행되어 농약에 의한 종합적인 질병부담을 산출하는 것은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농약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에 대해서는 일부 국가들에서 급성 농약 중독으로 인한 비용을 산출한 연구들이 주로 실시되었다. 각 연구들의 조사 시기와 대상 집단의 차이, 그리고 경제적 비용의 정의 및 산출 방식에 많은 차이를 보여 일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농약 중독자 한 명에 소요되는 평균 비용이 에콰도르에서는 9.9달러, 짐바브웨에서는 4.7-8.3달러, 스리랑카는 49.1달러, 이탈리아에서는 802달러로 각각 산출된 바 있다. 한편 네팔에서는 농약 노출과 건강비용, 농약사용과 경제적 수익 등을 비교하여 농약 살포자가 비농약 살포자에 비해서 훨씬 많은 건강비용을 지출한다고 보고되었으며, 브라질에서는 농약으로 인한 건강문제의 치료를 위한 비용이 농약을 사용하는 이익의 25-42%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도 건강보험 자료를 통해 농약 중독으로 인한 비용을 산출하였다(표 6-1). 농약 중독의 종합적인 경제적 비용을 산출하기 위해 농약 중독으로 지출되는 직접 의료비용 외에도 그 질병으로 인한 교통비, 간병비, 노동력 감소율 및 손실액 등 간접 비용 등이 포함되었다. 직접의료 비용은 보험 자료를 통해서 산출하였고 간접 비용은 기존에 알려진 정보 등을 모아서 추산하였다. 연구 결과 우리나라 2009년도 급성 농약 중독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약 1,900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비용의 대부분은 생산성 손실 특히 조기 사망에 의한 손실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질환들보다 직접 의료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간접비용이 많은 이유는 급성 농약 중독이 대부분 자살 목적으로 농약을 복용한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표 6-1> 국내 급성 농약 중독에 의한 경제적 부담, 2009
(단위:천원)
출처:Choi Y et al. Economic burden of acute pesticide poisoning in South Korea. Tropical Medicine & International Health. 2012.
이 연구에서 산출된 1,900억 원이라는 비용은 다른 질병보다 크다고 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급성 농약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농약 중독으로 인해 의료보험에서 지출된 비용은 약 10억 원으로 전체 의료보험 비용의 0.05%에 불과하지만 급성 농약 중독으로 인한 간접비용은 전체 질환의 0.31%를 차지한다. 전체 질병 중 차지하는 직간접 비용의 이러한 큰 차이는 농약 중독의 경우 사망률이 높아 치료비용은 적게 들지만 조기 사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 등이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농약 중독이 다른 질환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에서 발생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이처럼 직접비용이 적은 것이 그동안 농약 중독이란 질병에 사회적 관심이 적었던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한편 보험 자료를 통해 산출된 농약 중독 비용은 여러 제한점을 갖는다. 우선 산출된 값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하지 않은 급성농약 중독의 경우 병의원을 찾아오지 않아 자료에서 누락될 수 있으며, 증상 및 징후가 비특이적이어서 다른 질환으로 진단될 수도 있다. 그리고 농약으로 인한 만성중독에 의한 질병 부담과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농약의 만성중독은 급성중독과 같이 질병 분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여러 증상과 징후가 농약의 만성 노출에 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기록할 진단 코드가 없으며 따라서 기존에 잘 알려진 유사한 질병으로 잘못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농약 노출이 암이나 신경계 질환의 발생을 높였다면 이러한 부분도 농약으로 인한 질병부담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농약에 의한 경제적 비용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농약을 사용함으로 해서 얻어지는 작물 생산의 이익과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주는 피해는 각각 어느 정도이며, 농약의 사용이 과연 피해를 감수할 만큼 충분한 이익을 주는 것인지를 구명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농약을 관리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농약이 단순히 작물 생산을 증가시키는 비용을 넘어서 농약 사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들이 발생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농약을 사용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이 보건학적 피해를 감수할 만큼의 충분한 보상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농약은 외부효과(externality)1가 크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은(계산되지 않은) 비용이 그만큼 증가되어, 농약에 의한 사회적 부담이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농약 사용에 의한 외부효과는 비용이 흔히 무시되는 경우가 많으며, 비용이 일정 시간 뒤에 발생되기도 하고, 잘 알려지지 않는 집단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농약 제조사는 농약으로 인해 발생되는 중독 및 건강영향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으며 농업인들은 농약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제거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이러한 부분은 표면적으로 계산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가 결국은 지불하게 되는 비용들이다.
미국에서의 연구에 의하면 농약으로 인한 환경 및 인구집단의 피해에 대한 간접비용이 약 96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표 6-2). 이 연구에서 고려된 건강 및 환경 비용들로는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농약 제조 근로자 및 살포 근로자와 가족들의 농약 노출로 인한 건강 영향)뿐 아니라 가축, 어류, 야생 동물 및 곤충에 미치는 피해, 그리고 지하수 오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적 영향들이 고려되었다. 즉 농약 살포에 의한 토양과 표층수를 오염시킴으로 인해 물을 처리하여 식수로 적합하게 만드는 데 드는 비용, 수생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물고기를 죽임으로 발생되는 피해 비용, 자연에서의 생물 다양성에 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인한 비용 등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발생하지 않을 비용들로서 농약의 사회적 비용으로서 포함될 수 있다.
<표 6-2> 미국에서 농약으로 인한 환경 및 사회적 비용 추정
(단위:백만 달러/년)
출처:Pimentel D. Environmental and Economic Costs of the Application of Pesticides Primarily in the United States. In:Peshin R and Dhawan AK, eds. Integrated Pest Management: Innovation-Development Process. Springer. 2009.
농약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농작물 감소를 통해 경제적으로 손해라는 의견들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농약 사용을 사회에서 어느 한 순간 금지시키는 상황을 근거로 하는 계산은 현실적이지 못한 가정으로서 비용을 과대평가하여 산출할 수 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실제로는 점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러한 상황에 근거하여 비용이 계산된다면 훨씬 적은 비용이 산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존 계산과정은 병해충종합관리와 유기농 프로그램을 통해 작물 손실 없이 농약사용을 줄이는 성공적 경험들을 포함시키지 못하였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편 작물의 수확을 감소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농약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어 농약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그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과연 우리 사회에 많은 손실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스리랑카에서 실시된 연구에 의하면 자살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일부 살충제를 금지시킨 것이 농작물의 감소나 생산비용을 증가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도 작물 생산의 감소 없이 곡물가격의 변화도 거의 없는 범위 내에서 농약 사용을 약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따라서 농약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여도 최소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하게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농약이 존재하는 지는 충분히 고려해 보아야 할 내용이다.
농약 사용으로 인한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농약 사용으로 인한 작물 증산의 직접적 이익뿐 아니라 보이지 않게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을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은 이러한 평가를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모든 면을 금전적인 단위로 수량화하여 분석한다. 그러나 환경 및 건강영향들을 단순히 금액으로 수량화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비용을 평가하므로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손실을 보는지를 다루는 것은 무시될 수 있다. 만약 일부 집단이 이익을 많이 얻더라도 전체 집단이 손실을 보게 된다면 윤리적 형평성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농약 사용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경우 피해 보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없이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불공평하게 된다.
1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발생시키면서도 이에 대해 대가를 받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